여요전쟁이 끝난 연도

여요전쟁이 끝난 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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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0일출제 횟수: 2정답률: 50%
📜 역사/한국사
✏️편집자
여요전쟁은 2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요나라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을 가리킨다.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 승리로 막을 내렸다.
고려와 거란 사이의 전쟁은 993년(성종 12) 소손녕이 이끄는 거란군의 1차 침입으로 시작되었다. 거란은 송나라와의 결전을 앞두고 배후 세력인 고려를 제압하고자 하였으며, 이에 고려는 소손녕의 80만 대군 주장에 맞서 서희가 외교 담판을 벌였다.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명시하고 여진족이 점유하던 압록강 동쪽 지역의 영유권을 주장하여 강동 6주(흥화진, 철주, 통주, 곽주, 귀주, 숙주)를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1010년(현종 1)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거란 성종이 40만 군사를 이끌고 2차 침입을 감행했다. 강조의 주력 부대가 통주 전투에서 패배하고 현종이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하는 위기를 겪었으나, 양규가 이끄는 고려군이 후방에서 거란군을 지속적으로 타격하여 거란의 철수를 이끌어냈다. 1018년(현종 9)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3차 침입을 시도했으나 상원수 강감찬이 이끄는 20만 8천 명의 고려군에 의해 저지되었다. 강감찬은 흥화진에서 소가죽으로 물길을 막았다가 터뜨리는 전술로 기선을 제압했으며, 개경 진입에 실패하고 퇴각하는 거란군을 1019년(현종 10) 2월 1일 귀주에서 섬멸하였다. 《고려사》 권94 강감찬 열전에 따르면 귀주에서 살아 돌아간 거란군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 이 전쟁의 결과로 고려, 송, 거란 사이의 세력 균형이 이루어졌으며 고려는 북방의 안정을 위해 나성과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