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건국 연도기원전18년2026년 3월 20일출제 횟수: 5정답률: 0%📜 역사/한국사✏️편집자더보기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를 열던 시기에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왔다.서기전 18년 부여족 계통의 온조 집단이 하북위례성에 정착하여 건국한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함께 삼국 시대를 이끌었던 고대 국가이다. 건국 초기 국호를 십제라 하였으나 이후 비류계를 통합하고 초고왕 대에 하남위례성으로 중심지를 옮기며 백제로 개칭하였다. 백제는 한성도읍기(서기전 18~서기 475), 웅진도읍기(475~538), 사비도읍기(538~660)의 세 시기를 거치며 성장하였으며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하기까지 678년 동안 존속하였다. 백제의 건국과 성장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지》 동이전의 내용이 일부 상충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온조왕 대에 이미 전라북도 고부 지역까지 영역을 확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학계에서는 3세기까지 백제가 마한 연맹체의 일원이었으며 고이왕 대에 이르러서야 고대 국가의 토대를 갖춘 것으로 파악하는 절충론적 해석을 취한다. 고이왕은 6좌평과 16관등제를 마련하여 지배 체제를 확립하였고, 이후 4세기 근초고왕 대에 이르러 남으로 영산강 유역을 장악하고 북으로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백제는 지정학적 이점을 활용하여 중국 남조의 문물을 적극 수용하고 이를 백제화하여 왜와 가야에 전수하는 문화적 중개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384년 침류왕 대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공인하였으며, 이는 강화된 왕권을 뒷받침하는 통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였다. 성왕 대에는 사비로 천도하여 국호를 남부여로 개칭하고 중앙 관제를 22부사제로 정비하는 등 중흥을 꾀하였으나, 나제동맹의 결렬과 관산성 전투에서의 전사로 인해 기세가 꺾였다. 멸망 직전의 백제는 의자왕 초기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대외 공세를 펼쳤으나, 내부 지배층의 분열과 나당연합군의 결성으로 위기를 맞았다. 660년 계백의 황산벌 전투 패배와 사비성 함락으로 의자왕이 항복하며 국가의 명맥이 끊겼다. 이후 복신, 도침, 흑치상지 등이 주류성과 임존성을 중심으로 3년간 치열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왜...더보기추천비추천공유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