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국보의 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국보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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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0일출제 횟수: 1정답률: 100%
📜 역사/한국사
✏️편집자
한국 고고학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가 국보로 지정되었다. 신라의 거대 고분들과 비교해 봐도 무령왕릉의 국보 밀도는 매우 높다. 천마총은 총 출토 유물 11,500여 점 중에서 4건이 황남대총에서는 총 출토 유물 58,000여 점 중에서 4건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무령왕릉은 1971년 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현 무령왕릉과 왕릉원)에서 배수로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된 백제 제25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릉이다. 삼국시대 왕릉 중 피장자의 신원과 축조 연대가 명확히 확인된 유일한 사례로, 벽돌을 쌓아 만든 전축분 형식을 띠고 있다. 발굴 당시 묘도 입구에서 발견된 지석(誌石)에는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이 523년 서거하여 525년 안치되었다는 기록이 명시되어 있어 백제사의 절대 연대를 확정 짓는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총 4,600여 점에 이르며, 이 중 12건 17점이 국보로 지정되어 단일 고분으로는 유례없는 지정 밀도를 보여준다. 주요 국보로는 왕과 왕비의 금제 관장식(각 1쌍), 금귀걸이(3쌍), 금목걸이(2개), 은팔찌(1쌍) 등 정교한 장신구와 더불어 무덤을 지키는 상상의 동물인 석수(石獸), 왕과 왕비의 베개 및 발받침, 청동거울 3점 등이 포함된다. 특히 관재로 사용된 금송(金松)이 일본산임이 밝혀지고, 중국 남조 양나라 양식의 벽돌무덤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시 백제의 활발한 국제 교류 양상을 실증한다. 그러나 발굴 과정은 한국 고고학계의 큰 과오로 기록되어 있다. 발견 당시 쏟아진 사회적 관심과 취재진의 압박, 발굴단의 경험 부족으로 인해 단 17시간 만에 조사가 끝나는 졸속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유물의 정확한 배치 상태 기록이 누락되고 일부 유물이 훼손되는 등 고고학적 가치가 일부 상실되었다. 이러한 실패는 이후 천마총과 황남대총 발굴에서 엄격한 현장 통제와 정밀한 기록 보존이 이루어지는 반면교사가 되었다. 현재 무령왕릉 내부 석실은 보존을 위해 1997년부터 영구 비공개 상태이며, 인근의 모형 전시관을 통해 내부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