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일본에 사신을 보낸 횟수

발해가 일본에 사신을 보낸 횟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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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0일출제 횟수: 2정답률: 50%
📜 역사/한국사
✏️편집자
발해가 727년부터 멸망 직전까지 약 200년간 일본에 파견한 외교 사절단의 총 횟수. 초기에는 신라 견제라는 군사적 목적이 강했으나, 후기에는 담비 가죽과 인삼을 판매하는 대규모 무역단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발해는 727년(무왕 10년) 고인의를 정사로 하는 첫 사신단을 파견한 이래, 926년 멸망 직전까지 총 34회에 걸쳐 일본에 사신(발해사)을 보냈다. 반면 일본에서 발해로 보낸 사신(견발해사)은 총 12회로 기록되어 있다. 양국의 교역은 초기에는 당과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정치적 목적이 강했으나, 9세기에 접어들며 점차 상업적 성격이 짙어졌다. 발해는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를 천손(天孫)이라 칭하거나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국왕(高麗國王)으로 표기하여 대등하거나 우월한 지위를 점하고자 했다. 이에 대해 자국 중심의 천하관을 가진 일본은 발해를 번국(藩國)으로 간주하며 국서의 형식을 문제 삼아 마찰을 빚기도 했다. 발해 사신단은 초기 24인 수준에서 후기에는 최대 1,1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무역단 형태로 발전했다. 일본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사신 파견 주기를 6년 혹은 12년에 1회로 제한하려 했으나, 발해산 담비 가죽[貂皮]과 인삼 등을 선호한 일본 귀족층의 수요로 인해 실제 교류는 약 3년에 1회 꼴로 빈번하게 지속되었다. 항로는 계절풍과 해류의 영향으로 갈 때와 올 때가 달랐다. 발해에서 일본으로 갈 때는 주로 북서풍을 이용해 홋카이도나 노토 반도 방면으로 향하는 북회항로를 이용했고, 일본에서 돌아올 때는 남동풍을 타고 동해를 횡단했다. 이러한 교류의 흔적은 일본 이시카와현 유적에서 발견된 온돌 시설과 일본이 800년간 사용한 선명력(당의 역법) 등을 통해 실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