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건국 연도기원전57년2026년 3월 20일출제 횟수: 2정답률: 100%📜 역사/한국사✏️편집자더보기로마의 영웅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현재의 프랑스 정복)을 한창 치르고 있을 때, 박혁거세는 알에서 깨어났다.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에 건국되어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한 고대 왕조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건국 연대를 서기전 57년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학계에서는 금속 문화의 유입 시기와 성읍국가의 출현 과정을 고려할 때 실제 국가로서의 기원은 이보다 앞설 개연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신라는 경주평야의 급량, 사량, 본피, 모량, 한기, 습비 등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에서 출발하였으며, 초기에는 박, 석, 김의 세 성씨가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는 형태를 띠었다. 국호는 초기 사로(斯盧), 사라(斯羅), 서나벌(徐那伐), 서라벌(徐羅伐) 등 다양하게 표기되었으나, 503년(지증왕 4)에 덕업일신 망라사방(德業日新 網羅四方)의 의미를 담아 신라로 확정되었다. 다만 414년에 건립된 고구려 《광개토왕릉비》에 이미 신라라는 명칭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실제 사용은 그 이전부터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신라는 4세기 내물마립간 시기에 이르러 김씨에 의한 왕위 독점 세습 체제를 확립하였으며, 마립간이라는 칭호를 통해 연맹왕국의 지배자로서 권위를 강화하였다. 6세기 법흥왕과 진흥왕 대에 이르러 신라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520년(법흥왕 7) 율령 반포를 통해 17관등제와 공복 제도를 체계화하였고, 불교 공인과 상대등 설치를 통해 중앙집권적 귀족 국가의 기틀을 완성하였다. 이어 진흥왕은 551년 백제와 연합하여 한강 유역을 점령한 뒤, 553년 이를 독차지함으로써 중국과 직접 교류할 수 있는 문호를 확보하였다. 이러한 영토 확장은 창녕, 북한산, 황초령, 마운령에 세워진 네 개의 순수비와 단양 적성비를 통해 실증된다. 통일 이후 신라는 전제 왕권의 강화와 함께 9주 5소경의 지방 행정 체제를 정비하였다. 그러나 하대에 들어 왕위 계승을 둘러싼 진골 귀족 간의 내분이 격화되고 지방 호족 세력이 대두하면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었다. 889년(진성여왕 3) 조세 독촉으로 인한 농민 반란을 기점으로 내란기에 접어들었으며, 결...더보기추천비추천공유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