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고승 원효(元曉, 617~686)가 당나라 유학 길에서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사건
그의 나이 만 44세 때의 일이다. 661년(문무왕 1) 원효는 의상(義湘)과 함께 두 번째 입당 유학을 시도하던 중, 직산(지금의 경기도 평택 인근) 부근의 한 토굴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잠결에 심한 갈증을 느낀 원효는 주변에 잡히는 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매우 달고 시원하다고 느꼈으나, 이튿날 아침 그것이 무덤 속 해골에 고인 썩은 물이었음을 알고 구토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원효는 "사물 자체에는 정(淨)과 부정(不淨)이 없으며,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를 깨달았다. 그는 "마음이 생기면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해골과 바가지가 둘이 아니다(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龕墳不二)"라는 게송을 남기고 유학을 포기한 채 신라로 돌아왔다.
이 일화는 10세기 후반 중국의 《송고승전(宋高僧傳)》과 12세기 초 《임간록(林間錄)》 등에 기록되어 전해진다. 초기 기록인 《송고승전》에서는 해골물 대신 '무덤인 줄 모르고 잘 때는 편안했으나, 무덤인 줄 안 뒤에는 귀신이 나타났다'는 심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서술하고 있다. 원효는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후 특정 종파에 얽매이지 않는 화쟁(和諍) 사상을 펼치며 신라 불교의 대중화를 이끌었다.